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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시간
  • 김별아 ㅣ 2018-03-20
  • 제본형태 : 무선 ㅣ 면수 : 268 ㅣ 크기 :
  • ISBN : 9788965746461(8965746469)
  • 가격 : 15,000 원
우리의 일상 속에 역사가 있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조선시대 표석에서 길어낸 삶의 모습과 생에 대한 질문 일상 그리고 역사, 서울의 시간들을 거닐다 소설가 김별아, 조선시대 표석에 담긴 삶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무심한 일상을 깨운다 1394년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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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 속에 역사가 있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조선시대 표석에서 길어낸 삶의 모습과 생에 대한 질문

일상 그리고 역사, 서울의 시간들을 거닐다
소설가 김별아, 조선시대 표석에 담긴 삶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무심한 일상을 깨운다

1394년 조선의 정궁이 옮겨진 뒤 줄곧 수도의 자리를 지켜온 곳이 서울임을 헤아려볼 때, 지금의 일상적인 공간들이 그때의 사람들에게도 삶의 터전이었음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바삐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지난 시간을 가만히 상상해보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베스트셀러 『미실』의 김별아 작가가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한 조선시대 표석을 찾아가 과거의 자취와 현재 모습을 함께 풀어쓴 『도시를 걷는 시간』을 출간한다. 월간 《전원생활》에 2016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9개월간 연재된 원고로, 작가는 사대문 안팎에 놓인 조선시대 주요 국가 기관들과 당시 서민들이 살아낸 생생한 삶의 흔적들 32곳을 직접 찾아가며 문장에 담았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추사 김정희 등의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표석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어 독자들을 수백 년 전 서울로 초대한다.
작가는 ‘역사는 그저 과거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만나는 모든 순간’이라고 말한다. ‘수천 수백 년 전 바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삶을 상상하며 그려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자 올바르게 기억하는 법인 것이다. 이 책에는 표석을 둘러싼 주변 전경 사진을 함께 수록하여 독자들이 익숙한 공간에서 시간 저편의 삶을 떠올릴 수 있게 하였으며, 원고 말미마다 표석 위치를 명기하여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왔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 중 ‘1장 왕실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에서는 왕실의 음악 교육을 담당했던 장악원, 단종 비 정순왕후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긴 정업원 등 왕실의 빛과 그림자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표석들을, ‘2장 오백 년 도시 산책’에서는 노비 문서를 보관하던 장예원, 탐관오리에 대한 형벌을 거행하던 혜정교 등 도시 곳곳에 스며 있는 삶의 애환을 담았다. ‘3장 삶의 얼굴은 언제나 서로 닮았다’에서는 소금 거래 기관인 염창, 도시의 치안을 관리한 포도청과 죄인을 수감하던 전옥서 등을 다뤘다. ‘4장 사랑도 꿈도 잔인한 계절’에서는 왕실의 그림자처럼 지내야 했던 종친들을 관리하던 종친부와 조선 유교 사회의 효와 사랑의 모순을 담은 쌍홍문?운강대 등을, ‘5장 한 발자국 바깥의 이야기’에서는 안평대군, 영빈 이씨 등 역사의 중심에서 조금은 물러나 있는 인물들과 관련된 표석과 그 안의 삶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세심한 시선으로 표석을 따라가며 시간의 무게에 묻혀 있던 수많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그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무심했던 공간에도 의미가 더해져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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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데뷔 초기 사회 변화와 함께 불어닥친 혼란을 개인적 감성으로 써내려간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을 발표해 젊은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후 소재의 다각화에 몰두한 〈축구전쟁〉으로 호평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들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영영이별 영이별〉〈논개〉〈백범〉〈열애〉 등을 펴내며 실존인물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며,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역사에 휘말린 조선 청년의 이야기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발표했다. 이후 ‘조선 여성 3부작’으로 조선 왕실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彩虹: 무지개)〉, 조선 양반가 간통 사건을 소재로 한 〈불의 꽃〉, 조선을 뒤집은 충격적 스캔들을 소설화한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펴냈다.
원작을 복원한 ‘무삭제 개정판’ 〈미실〉을 출간했으며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을 주인공으로 한 〈탄실〉을 발표했다. 이외에 소설집으로 〈꿈의 부족〉이 있다.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족판타지〉(〈식구〉개정판)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삶은 홀수다〉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통해 소소한 일상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담았고, 아들과 함께 오른 백두대간 이야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군에 간 아들에게 쓴 편지인 〈스무 살 아들에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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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_ 오래된 도시 서울의 무구한 기억들

1장 왕실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왕의 남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그 여자와 그 남자가 헤어졌을 때

2장 오백 년 도시 산책
어쩌면, ‘헬조선’과 ‘탈조선’의 유래
가파른 길 위,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
끓는 물에 삶아 마땅한 죄
너의 그 사랑이 잠긴 못

3장 삶의 얼굴은 언제나 서로 닮았다
눈물은, 땀은, 모든 지극한 것들은 왜 짠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죄, 그리고 벌
세상을 그리다

4장 사랑도 꿈도 잔인한 계절
어쩌다 사랑은
영욕의 세월이 빚은 예술혼
태양의 뒤편, 빛과 그림자
그토록 차갑고 투명한 신의 선물

5장 한 발자국 바깥의 이야기
그 여자의 두 얼굴
아픔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나니
맑고 질펀히 흐르다
내 자취에는 풀도 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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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다란 빌딩 앞 화단 한구석에 오늘 내가 찾아온 장악원 터 표석이 덩그마니, 여느 표석들이 그러하듯 생뚱맞고도 무심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돌은 차갑다. 돌 위에 새겨진 말도 딱딱하다. 아무리 거듭해 읽어도 감흥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연을 모르면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한 표석을 휙휙 스쳐 지난다. 어디 표석뿐인가? 거의 모든 역사가 그러하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외우는 역사는 현재의 삶과 전혀 무관한, 시간의 박제일 뿐이다.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한다. 돌덩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건조한 설명을 곱씹는 대신 빌딩 앞 너른 터에 여러 개 놓여있는 벤치 중 하나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 속에 빠져본다. 내가 역사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그러하다. 수천 수백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살았던, 이 땅을 밟고 지났을 사람들과 삶을 상상하며 그려내는 것.
―[‘왕의 남자’는 어떻게 살았을까?]중에서

숭인근린공원은 길을 경계로 둘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편 오르막길 위에 펼쳐지는 넓은 운동장을 우측으로 따라 돌면 장미 울타리 사이에 동망봉 표석이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나가 공원을 가로질러 왼편 끝까지 가면 후대에 지은 동망정이 나타난다. 전설에 의하면 단종과 헤어진 정순왕후 송씨는 시시때때로 동망봉에 올라 영월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망봉에 서도 영월까지는커녕 동묘와 남산조차 시원스럽게 바라보기 힘들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 가로막힌 시야는 헐벗은 봉우리 위에 홀로 서서 고통과 분노와 회한과 지독한 그리움을 곱씹었을 500년 전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기 어렵게 한다. 다시 상상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즐겁게 배드민턴 시합을 하는 공원 한구석에 앉아 어지러운 건물들과 번잡한 시간을 조금씩 지워내본다. 그녀가 홀로 살아남아 견딘 65년은 어떠했을까?
―[그 여자와 그 남자가 헤어졌을 때]중에서

이름만 돌에 새겨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뜻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하는 도시 계획은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일까?
(…) 성종 때 2년 동안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혜택을 보았던 문신 조위가 쓴 [독서당기]의 한 구절을 되뇌며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말을 기르고,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기른다. 그것이 조상들께서 가파른 길 위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을 지은 뜻이었다.
요즘 독서당길 일대는 한적함을 무기로 한 상권이 개발되어 고급 카페나 이색 점포들이 들어서는 중이라 한다. 현대의 고요함과 한가함은 학구열이 아니라 임대료와 권리금을 높인다. 내리막길에 발끝이 위태롭다. 소란한 세상에 냉가슴이 먹먹하다. 우리는 과연 나아가고 있을까? 나아간다고,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가파른 길 위,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중에서

문득 길가 모퉁이에 특이하게 생긴 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이름하여 ‘소금다방’이다. 벽에 그려진 ‘소금커피’의 설명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게 카페 문을 밀었다.
낯선 동네를 헤매고 다니며 혼자 즐기는 재미가 있다면,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그 동네의 재래시장이나 맛집을 찾아보는 것이다. 언감생심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유명 레스토랑 같은 데는 아니고, 이를테면 지난번 독서당 터 표석을 찾아 옥수동에 갔을 때는 옥수역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소문난 오징어튀김을 맛보았고, 동망봉과 정순왕후 관련 표석들을 찾아갔을 때는 창신시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매운 불족발을 사왔다. 세상이 커다란 문젯거리와 고민으로 넘쳐날 즈음엔 도리어 이 같은 작은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거대 역사만이 아니라 시간의 갈피 속에 숨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또한 엄연한 역사일 테니. 나 또한 오늘의 역사를 살고 있음을 기억하되 그 물결에 잠식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눈물은, 땀은, 모든 지극한 것들은 왜 짠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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